“저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새들에게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사람들의 관심이 생긴다면 우리 인간이 새들이 살아가는 환경에 대해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될 것이고, 이러한 관심은 새를 보호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
‘오조리 탐조대회’에 참석한 한 초등학생이 쓴 후기다. 새들이 머물지 않는 습지에 인간의 생존인들 지속 가능할 것인가라는 의미다. 오조리(吾照里)는 성산일출봉에서 떠오른 해가 햇살을 펼치면 가장 먼저 닿는 마을이다. 광치기해변과 식산봉과 성산일출봉이 감싸는 해안은 제주에서 보기 드문 갯벌로 지난해 말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연안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새들이 머물지 않는 곳, 인간도 살기 어렵다
지난해 늦가을 오조리마을회(이장 고기봉)와 물새알(대표 여상경)이 마련한 탐조대회가 개최됐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50여 명이 참석했다. 마을이장의 개회사에 이어 물새알 여상경 대표의 오리엔테이션에 이어 모둠별로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오조리 연안습지와 마을 주변에 새들을 관찰했다.
오조리에는 양어장, 마을 어장, 저류지, 포구 등 다양한 연안습지가 있다. 이날 관찰된 새들은 저어새, 중백로, 흑로, 논병아리, 물수리, 제비, 동박새, 붉은발도요, 쇠백로, 가마우지, 왜가리, 알락해오라기, 덤불해오라기, 멧비둘기, 바다직박구리, 민물도요, 물닭, 청둥오리, 딱새, 쇠물닭, 원앙, 흰죽지, 괭이갈매기, 방울새, 청다리도요 등 30여 종에 이른다.
전문가나 행정이 아닌 시민들 스스로 모니터링에 참여하고 마을공동체가 준비하며 마을 어장을 중심으로 탐조가 이뤄졌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 오조리 마을탐조대회를 개최한 여대표는 ‘자연스럽게 우리 마을의 자연환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지 느낄 수 있고, 시민 모니터링으로 쌓인 데이터는 이후 마을 발전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조리처럼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요청한 마을은 주민들의 환경 인식 증진과 마을 밖에 시민들의 관심도 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조리 일대의 연안은 살조개와 바지락이 많이 서식한다. 또 한때 양어장에서는 뱀장어, 숭어, 우럭 등을 키우기도 했다. 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물때에 맞춰 조개잡이 체험을 할 수도 있는 곳이다.
제주도의 화산섬의 특성상 마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식수가 확보돼야 한다. 해안마을인 오조리에는 연안에 주군디물, 족지물, 재성물, 엉물 등이 있고, 마을 안에도 얼피물, 논동네 등 용천수가 솟았다. 또 식산봉 서북쪽 재성물은 목욕탕으로 사용됐다. 이런 많은 용천수가 있어 제주도에서 드물게 보를 막아 쌀농사를 짓기도 했다.
육지의 기수지역처럼 오조리 연안이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환경 때문이다. 게다가 오조리 연안습지 동쪽은 성산일출봉과 광치기해변이 제방 역할을 하고, 북쪽은 식산봉이 자리하고 있어 안정된 내만을 형성해 물새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제주 최초의 연안습지보호지역
제주도는 2025년 환경자원총량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는 해당 시점의 환경자원의 양과 질의 총량을 감소하지 않도록 유지하고 관리하겠다는 약속이다. 그 항목에 자연환경, 지역환경, 생활환경, 인문·사회환경이 포함되고 이중 지역환경에는 습지, 오름, 곶자왈, 동굴, 천연기념물, 용천수, 문화·역사, 국내외적 위상 등이 포함된다.
지금 환경자원총량관리시스템에 등록된 습지가 320여 곳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물영아리오름습지, 물장오리오름습지, 동백동산습지, 1100고지습지, 숨은물벵듸습지 등이다. 모두 내륙습지에 해당한다. 제주도는 해안 254㎞가 해안으로 이뤄진 섬이다. 하지만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연안습지는 없다. 다행스럽게 오조리 연안습지가 최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오조리 연안습지는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개리, 노랑부리저어새, 수리 등 법정보호종을 포함해 연 1만여 개체의 물새가 찾아온다. 또 갈대, 거머리말, 고둥류, 조개류 등 해안과 연안 동식물이 서식하며, 특히 희귀식물인 황근 20여 그루가 집단 서식하는 곳이다.
지난해 초 마을주민들은 오조리 연안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제주 오조리 갯벌(0.24㎢)’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해양수산부는 ‘멸종위기종인 물수리, 노랑부리저어새 등이 서식하고 있어 생물다양성이 풍부하고,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갯벌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전하며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요청한 지역’이라고 지정 이유를 밝혔다. 무엇보다 큰 의미는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갯벌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는 점이다.
연안습지보호지역 확대를 제주연안으로
오조리 갯벌 습지보호지역 지정을 계기로 보호지역이 제주 연안으로 확대되고, 더 나아가 제주 연안습지를 람사르습지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길 기원한다. 2021년 ‘한국의 갯벌’은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오조리 갯벌 보호지역 맞은편 성산일출봉은 ‘화산섬과 화산동굴’의 하나로 세계자연유산이다. 세계자연유산이 강조하는 ‘완전성’이라는 측면에서 또 ‘한국의 갯벌’ 확대의 필요성 측면에서도 필요하다.
우선 오조리 갯벌 습지보호지역은 성산포 연안까지 확대돼야 한다. 지난 2022년 12월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당사국총회에서 ‘2030년까지 전 지구의 육지와 해안과 해양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정한다’고 약속했다. 우리나라도 회원국으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22년 말 기준 내륙의 17.3%, 연안 해양의 1.8%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서 관리 중이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30여년 동안 섬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문화 관련 정책연구를 한 후, 지금은 전남대학교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어촌공동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바다인문학, 바닷마을인문학,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