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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경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김태훈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만나면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는 인사말을 건네곤 합니다. good morning과 같이 아침을 강조하는 서양의 인사말과는 확연히 다르죠. 지난밤 별일 없었는지 걱정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우리가 잠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쓰게 된 인사말인 듯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적게 자는 나라입니다. 2016년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압도적인 꼴찌였습니다. OECD 평균인 8시간 22분과도 무려 40분 가량 차이가 나고 있어서 외국에서는 한국인의 수면 부족을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자료를 보고 생각보다 많이 자는 것 아니냐고 놀랍니다. 참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는데요. 근면 성실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한국 사람들에게 잠은 게으름의 상징이었어요. 잠을 아껴서라도 무언가를 더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죠. 이 정도면 잠을 아낀다기보다는 잠을 포기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지경이에요.
바쁜 일상에서 잠을 먼저 챙겨야 할 이유가 딱히 보이지 않는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잠은 뒤로 밀리게 됩니다. 게다가 잠자는 시간은 괜히 무언가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잠이 오는 건 에너지가 소진되었다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잠을 충분히 자야 다시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준비를 할 수 있어요. 우리 신체의 생리적 변화를 봐도 마찬가지인데요. 깨어 있는 동안 소비한 에너지는 그대로 수면 압력과 연결되죠. 에너지를 소비할수록 수면 압력은 높아져요. 실제 우리 뇌에는 수면 압력을 감지하는 아데노신 수용체가 있는데, 여기에 아데노신이 달라붙게 되면서 점점 수면 압력이 증가하게 되죠. 그렇게 휴식을 취하고 다음날을 준비하라고 알려주는 거에요. 잠이 낭비가 아닌 이유죠.
그런데 카페인은 이걸 방해합니다. 카페인이 아데노신과 비슷하게 생겼거든요. 카페인을 섭취하게 되면 아데노신 대신 카페인이 아데노신 수용체에 달라붙게 되요. 그러면 수면 압력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카페인의 효과는 6시간 정도 지나면 50% 이하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침이나 이른 오후에 마시는 커피는 우리의 수면을 방해할 가능성이 낮지만, 저녁에 마시는 커피는 잠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리고 잠을 제대로 충분히 자지 못하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중에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잠을 못 자면 충동적인 욕구나 행동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거에요. 이유는 명확한데요. 수면 부족이 충동 제어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결과는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면 잠을 못 잤을 때 어떤 충동이 나타날까요?
먼저 식욕을 제대로 억제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에는 그렐린과 렙틴이라는 식욕과 관련한 2가지 호르몬이 있어요. 그렐린은 허기를 느끼게 하고 렙틴은 포만감을 느끼게 하죠. 그런데 잠을 자지 못하면 그렐린은 증가하고 렙틴은 감소해요. 그래서 더 배가 고프고 먹는 걸 잘 멈추지 않게 됩니다.
게다가 잠을 못 잘 때 먹는 음식도 달라요. 주로 고칼로리 음식을 먹게 되죠. 수면 부족이 식욕과 같이 원초적인 욕구를 담당하는 뇌 부위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는데, 충동 제어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은 떨어뜨려요. 그래서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더 먹게 됩니다. 실제로 관련 연구 결과를 보면, 수일 간 4시간 정도 수면 시간을 줄였을 때 실험 참가자가 하루에 300 kcal를 더 먹었습니다. 1년으로 환산하면 약 11만 kcal에 달하니 엄청난 차이인 거죠.
먹는 음식 뿐 아니라 구매하는 음식도 마찬가지였어요. 단지 하룻밤 수면을 박탈했을 때도 칼로리가 높은 음식을 고릅니다. 심지어 충분히 밥을 먹고 갔는데도 말이죠.
이런 문제는 음식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충동 제어와 관련해서 쇼핑을 빠뜨릴 수 없죠. 종종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인데도 충동적으로 구매 버튼을 누르고 나중에 후회하곤 합니다. 그리고 반품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물건의 품질이나 서비스 문제가 아니라 단순 변심이라면 대부분 충동구매의 영향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관련한 연구 결과를 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때 충동적으로 구매하고 반품하는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는데요. 흥미로운 건 구매 시점이 자정을 넘겼을 때 단순 변심으로 인한 반품 확률이 더 높았다는 것이에요.
식욕이나 쇼핑 욕구 이외에도 일시적으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경우는 무척 많습니다. 도로에서 벌어지는 난폭운전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이탈리아에서 진행된 연구인데요. 서머타임이라고 부르는 일광절약시간제를 시작하는 날은 이전에 비해 1시간이 짧아져서 잠도 1시간 덜 자게 됩니다. 그날의 데이터를 보니 이전에 비해 추월을 더 많이 하고 교차로에서 신호에 대한 반응 시간도 길어지고 갑작스런 감속도 더 많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운전이 거칠어졌습니다. 잠이 부족했기 때문이죠. 평소에는 부드럽게 편안하게 운전하던 사람이 갑자기 거칠게 운전하면 바로 나무라기보다는 그 전날 잠을 잘 잤는지 물어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수면 부족은 우리가 가진 조절력을 떨어뜨리게 되고 충동적으로 결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결정에 앞서 충분히 고민하기는커녕 충동적인 결정으로 자신을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기도 하죠. 이와 관련하여 인지심리학에서 진행한 수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잠이 부족하면 눈앞에 보이는 단기적인 이익에 사로잡혀서 장기적으로는 무조건 손해를 보게 되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게 나타납니다. 누군가가 묻지마 투자를 하려고 한다면, 그런 결정을 비난하기 보다는 잠을 충분히 자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권유해 보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수면 부족은 대인 관계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충동적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해야 합니다. 그런데 잠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지면서 원치 않는 말을 내뱉거나 부적절하게 행동해서 갈등이 유발되기도 합니다. 또한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도 떨어져서 심지어 온화한 얼굴을 보고 위협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결국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게 어렵겠죠.
이렇게 공감 능력이 떨어지게 되면 누군가를 도와줄 가능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연구진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 결과를 보면, 의사가 야간 근무 후 진료에서 환자의 고통을 잘 공감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평소보다 진통제 처방 수준이 낮게 나왔습니다. 심지어 WHO,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수준보다 낮았습니다.
수면 부족으로 인한 공감 능력 저하는 여러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룻밤만 자지 못해도 출근길에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쉽게 발생하기도 하고요. 일광절약시간제를 실시한 직후에는 1시간 수면 부족으로 인해 기부금이 줄어들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다른 사람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져서 무언가를 믿고 맡길 가능성이 부족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 사람이 혹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각박해지고 있다면, 수면 부족에도 분명히 책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과식이나 충동구매, 난폭 운전 같은 행동을 절제력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행동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잠을 너무 절제해서 정작 그러한 충동적인 욕구와 행동을 적절하게 제어하지 못했던 것이죠.
이제는 잠을 줄여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입니다. 잠은 더 이상 게으름의 상징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제대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필수적인 조건입니다. 잠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 꼭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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