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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육아 에세이] 과정을 함께 한다 / 심재원 문화체육관광부 x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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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육아 에세이] 과정을 함께 한다 / 심재원

2021.01.06 문화체육관광부 x 보건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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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소개

아이가 아빠와 함께 그림을 그리기까지 너무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줬을 때 아이가 보인 변화. 심재원 아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빠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 '대화'와 '기다림'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들어볼까요?

콘텐츠 원고
안녕하세요 육아 에세이 작가 ‘그림에다’ 심재원입니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외출이 쉽지 않지만 작년 이맘때만 해도 주말 아침이 시작되면 창밖을 보며 아들이 그림 그리러 가자고 외치던 기억이 납니다. 주말이면 종종 한적한 곳을 찾아 캔버스와 이젤 그리고 화구 통을 들고 야외로 나갔습니다. 당시 7살이던 아들에게도 꽤나 역할이 있어서 작은 물건들을 나르고 그늘막 정도는 함께 칩니다. 야외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만으로도 종종 지
나가던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사람들이 무슨 그림을 그리냐고 물어보는 걸 좋아하던 아들이 생각납니다.

직장을 다닐 때 피큐어를 모으는 선배가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피규어가 넘쳐 난다며 내게 선물로 주곤 했습니다. 한 번은 인스타를 통해 그 선배의 방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집에 책이 많을 경우 이중 책장을 사용하는 집은 종종 봤는데 피규어가 너무 많아 방뿐 아니라 거실까지 책장 안에 피규어로 가득했습니다. 언제부턴가는 그런 아빠에게 영향을 받은 두 아들과 지금도 꾸준히 피큐어를 모으고 또 피규어를 통해 부자지간의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첫째는 어느 덧 대학을 갈 나이가 되었다네요.

제가 아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 지도 이제 6년이 지났습니다. 그 선배가 모은 피규어 정도까지는 아닐지언정 그래도 그동안 그린 그림들을 버리지 않아 상자로 박스 두 개가 가득 찼습니다. 선배의 가족이 피큐어를 모으는 것처럼 아들과 저에겐 이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연스레 일상이 된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들과 제가 그림을 함께 그리는 이런 습관을 갖게 된 데는 아들의 역할이 꽤나 컸던 것 같습니다. 처음 아들과 함께 그림을 그렸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이들은 지금도 그때그때 관심사가 바뀌는데 당시는 미니카에 빠져있을 때였습니다. 아들은 내가 그려주는 자동차를 다 그리기도 전에 자동차 이름을 맞추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손에 들려있는 색연필은 흰 도화지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늘 그렇게 아빠의 생각만으로 도화지를 채우고 아들은 맞장구를 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색연필 잡는 게 좀 서툴더라도, 선이 삐뚤빼뚤 그어지더라도, 행여 도화지 밖이 캔버스가 되더라도, 아들이 그림을 그릴 때까지 좀 더 기다려줬어야 했던 게 아닐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도화지 한 켠에 작고 또 옅게 소극적으로 자동차를 그려보려 하는 모습을 보고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안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아들이 도화지로 다가와 스스로 그림을 그리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곳곳에서 효율성을 따져가며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숟가락을 들고 따라다니고, 스스로 옷 입는 걸 기다리기 보다 서둘러 옷을 입힙니다. 그렇게 아이가 뭔가를 빨리 익히고 앞서가길 바라는 부모의 속도를 아이에게도 투영시킵니다.

아빠만 직장을 다니는 경우 아이와 과정을 함께 하는 시간을 갖기가 상대적으로 엄마에 비해 더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아들과 그렇게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히 그림은 조금 더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보단 함께 그리는 방식이 발전한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나름의 규칙이 생겼는데 아빠가 선을 하나 그으면 그 위에 아들이 이어서 그리고, 다시 아빠가 그립니다. (요즘은 아들이 먼저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내가 아들의 의도와 아주 다른 그림을 그렸을 때는 지우고 다시 그려야 하기 때문에, 대화를 충분히 나누고 그림을 그리는 노하우도 생겼습니다. 내가 커다란 의자를 그리면 아들이 그 위에 미래도시를 그리기도 하고, 큰 고래 그림으로 시작해 사방에 분수가 있는 호수마을로 완성되기도 합니다. 아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림은 변기 마을입니다. 변기 안은 휴양도시가 되었고, 곳
곳에 금이 간 도기 사이사이로 똥이 흘러나오기도 합니다. 그걸 거름으로 식물들이 그 주변에서 자라 거대한 숲이 만들어졌습니다. 서로가 번갈아 그리는 이 방식이 처음에는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그림으로 완성되었지만,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그림...... 아니 독특한 이야기가 담긴 그림들로 다시 보면서도 대화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림을 통해 아들은 이제 꽤나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아빠는 그림을 통해 지금의 아들의 관심사와 생각을 읽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하얀 도화지와 같습니다. 어른과 속도는 다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존에 없던 나름의 신선한 세계관이 만들어지는 중이었다는 걸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인 만큼 깨닫게 됩니다. 나의 앞선 걱정이 이미 아들의 도화지에 채색을 하고 있다면 그 그림은 어떻게 될까요? 앞으로도 아빠와 아들의 다른 속도가 함께 걸어가려면 아이를 기다려주고 또 과정을 함께 하면서 차이를 좁히기보다는 아이가 클수록 다름을 인정하고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려면 수많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다르니까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노력해 쌓은 아이와의 시간 그 과정들은 언젠간 입장이 바뀌어 노인이 된 나의 시간 속에 아이가 들어와 내가 아이와 보냈던 시간만큼 그 과정을 함께 할 거란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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