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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서 평화를 기억하다

코리아둘레길 'DMZ 평화의 길' 코스 중 하나인 '1·21 침투로' 탐방

2025.05.02 정책기자단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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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전선의 요충지 비룡전망대(구 승전OP)
서부전선의 요충지 비룡 전망대(구 승전 OP)

◆ 1·21 침투로, 기억을 따라 걷는 길

2025년 4월 19일, 잔비가 오락가락하던 토요일, 경기 연천군 고랑포 역사공원에 시민 탐방객들이 모였다.

우의를 입고 등에 번호가 새겨진 노란 조끼를 착용한 참가자들은 'DMZ 평화의 길 – 연천 구간' 탐방에 나섰다.

이번 행사는 과거 분단의 상흔이 남아 있는 비무장지대 일대를 걸으며,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탐방 구간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무장 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목적으로 침투했던 실제 경로를 따라 진행됐다.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참가자들은 긴장감이 감돌던 과거의 현장을 되짚으며, 한 걸음씩 기억의 길을 밟아 나갔다.

단순한 도보 체험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발로 확인하고 체감하는 시간이었다.

집결지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 출발 준비하는 탐방객들
집결지 고랑포구 역사공원에서 출발 준비하는 탐방객들

◆ 침투의 흔적

탐방은 DMZ 출입문을 통과하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첫 번째로 마주한 구간은 철조망과 함께 재현된 무장 공비 침투 지점으로, 작은 수로와 관로가 연결된 지역이었다.

탐방객들은 해설사의 설명을 통해 약 30미터 떨어진 실개천과 그 지형을 따라 이동한 공비들의 동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비들은 철조망 하단을 정밀하게 절단하고 통과한 뒤,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이를 다시 원상으로 복구하며 이동했다.

이러한 침투 방식은 아군 정찰 부대의 조기 발견을 어렵게 만들었다.

해설사에 따르면, 당시 북한 무장 공비 31명은 남하 경로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눈에 띄지 않는 수로를 선택했으며, 이는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다.

이 수로는 낮은 자갈과 잡목으로 뒤덮여 있어 탐지 장비나 조명탄에 잘 포착되지 않는 장소였다.

공비들은 그 안에서 몸을 낮추고 주변의 풀숲을 은폐 수단으로 삼아 조심스럽게 전진했을 것이다.

이들은 야간 작전에 대비해 철저히 위장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육군 26사단 마크를 부착하여 아군으로 위장하였으며, 군견과 감시 병력을 속이기 위해 평소 정찰 경로를 그대로 따라갔다.

얼굴에는 숯검정을 칠해 빛 반사를 막고, 발소리를 줄이기 위해 고무신이나 천으로 된 발싸개를 신었다.

무장은 PPS-43 기관단총, 수류탄, 실탄 수백 발, 단검, 3일 치 분량의 부식용 식량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한 명당 휴대 중량은 약 30kg에 달했다.

그 외에도 지령문서, 암호 해독 자료, 그리고 체포 시 자결용 수류탄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침투 방식은 은밀하면서도 치밀했다.

낮에는 덤불 속에서 은폐하며 대기했고, 밤이 되면 무전으로 서로의 위치를 확인하며 수로를 따라 이동했다.

말소리는 철저히 금지되었고, 손짓과 눈빛만으로 명령을 주고받았다.

해설사는 당시 공비들의 행동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들은 철저히 군사작전으로 준비되어 있었고, 침투 경로조차도 남측 군견의 탐지 습성을 고려해 결정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비들의 침투 재현 현장
공비들의 침투 재현 현장

공비들은 이후 임진강 인근 지역으로 이동해 첫 숙영을 마친 뒤, 1월 18일 새벽 2시경 석포리를 지나 파평산과 삼봉산 방면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1월 19일에는 초리골 일대에서 숙영하던 중, 나무하러 산에 올라온 우 씨 형제를 마주치게 된다.

이후의 전개는 뒤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먼저 이번 탐방 코스를 함께 따라가 본다.

탐방은 군사작전 도로를 따라 버스로 일정 구간을 이동한 후, 하차 지점부터 도보로 가게 된다.

도보 구간은 철책선과 나란히 이어지는 길로, 천연 매트가 깔려 있어 걷기 편하도록 조성되어 있었다.

탐방로 옆은 참호와 교통호가 나란히 이어진다. 

이곳은 지금도 북측에서 관측할 수 있는 지역으로, 탐방객들은 큰 숫자가 새겨진 조끼를 입고 움직였다.

군은 실시간으로 감시 초소와 교신하며 인원을 확인한다.

참호 사이를 걸을 때 들려오는 바람 소리와 발소리는 그 어떤 해설보다 묵직한 울림을 전했다.

참가자들은 말을 아끼며 주변을 살폈고, 그 정적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나란히 걷게 했다.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됩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총구가 마주했던 시절이 있었다니 믿기지 않아요."

한 여성 참가자의 말 속에는 이 탐방이 전한 메시지가 모두 담겨 있었다.

우리는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미래를 걷고 있는 것이다.

비룡전망대 포토존
비룡 전망대 포토존

탐방의 마지막 지점은 비룡 전망대였다.

이곳은 북한 무장 공비들이 실제로 남방한계선을 넘었던 경로와 가까운 위치지만, 현재는 군사보안 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일반인의 출입과 촬영은 제한된다.

전망대 아래에는 '서부전선 절대 방패, 고랑포 절대 사수'라는 문구가 적힌 철제 현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망대 위에서는 흐릿한 날씨 속에 북측 능선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참가자들은 말을 아끼고 조용히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소리 내지 않았지만, 모두의 시선은 멈춘 채 그 풍경 너머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고구려의 군사 유적지인 호로고루성이었다.

주상절리 절벽 위에 자리한 이 성곽은 한탄강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참가자들은 유적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조심스럽게 사진을 남기거나 안내판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탐방을 마친 참가자들은 각자의 색다른 느낌을 품은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공비들이 철망을 뚫고 임진강까지 침투 루트
공비들이 철망을 뚫고 임진강까지 침투 루트

◆ 산속 5시간, 운명을 바꾸다

앞서 침투한 공비들과 조우한 나무꾼 형제의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1968년 1월 19일 새벽, 파주 삼봉산 초리골 일대에서 나무를 하던 중 공비들과 마주친 것은 우 씨 형제 중 장남이었다.

이어 형을 찾으러 다니던 동생도 차례로 붙잡혔고, 그 뒤로 두 명의 형제가 더 억류되면서 결국 네 형제가 모두 공비들에게 포로가 되었다.

공비들은 본부의 사살하라는 명령을 기다리며 5시간 동안 무전 교신을 시도했지만, 암호 해독 실패로 명령 하달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스무 살 막내 우성재는 침착하게 자신들이 그저 가난하고 살기 어려운 농민일 뿐이라고 말하며, 공비들에게 인민을 해방하러 온 해방군들이 온 것을 환영하고 감사한다고 했다.

형제들은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총구는 여전히 그들을 향하고 있었고, 주위는 숨조차 삼키기 어려운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막내 우성재는 형들에게 눈빛으로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고, 큰 형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막내를 바라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비들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작전 실패의 책임을 두려워했고, 또 누군가는 민간인 학살이 가져올 파장을 염려했다.

결국 공비들 사이에서 투표가 진행됐고, 18대 13으로 형제들은 풀려났다.

공비들은 형제들에게 북한식 입당 원서를 쓰게 했고, 큰형에게 '경기도지사', 둘째에게는 '파주 군수'라는 직책을 부여했다. 이는 북한식 명명 문화의 일환이었다.

이 과정에서 공비들은 농담처럼 웃었지만, 형제들은 그 안에 담긴 은근한 협박의 뉘앙스를 잊지 않았다.

풀려난 후 형제들은 곧장 산에 내려왔고, 집에 도착한 뒤 아버지와 자초지종을 상의했다.

그날 밤 9시경, 형제들은 파출소에 찾아가 공비 출현을 신고했다.

이는 인근 부대에 즉각 전달되었고, 대규모 경계령과 탐색 작전이 시작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막내 우성재는 경찰에 특채되어 평생을 공직에 몸담았다.

그는 사건 이후에도 간간이 언론 인터뷰에 응하며 자신이 경험한 5시간의 공포와 공비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전했다.

그에게 있어 '공비'란 적이지만 인간으로서는 시대가 낳은 비극의 인물들이었다.

그는 유일한 생존 공비였던 김신조와도 오랜 기간 관계를 이어갔다.

처음엔 서로를 경계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로의 인생을 응원해 주는 존재가 되었다.

2025년 4월 9일, 김신조가 별세하자 우성재는 조용히 빈소를 찾아와 머리를 숙였다.

당시 조문객 중에는 그 사연을 아는 이들이 많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리라.

DMZ평화의길 탐방을 마치고
DMZ 평화의 길 탐방을 마치고

◆ 1·21 사태가 남긴 변화들

이 사건은 단지 군사적 충돌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체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 향토예비군 창설 (1968. 4. 1) : 민간 전시 대응 병력 체계 최초 도입
■ 주민등록제 전면 시행 (1968. 11. 21) : 주민등록번호·지문 등록으로 신분 확인 체계 확립
■ 민방위기본법 제정 (1975) : 대민 방어 체계 법제화
■ 철책 보강, 검문검색 일상화 : 감시와 통제 중심의 일상화

주민등록제와 지문 등록이 표준화되었고, 국가 보안 체계의 일상화를 시행했다.

국민 개인의 삶까지 침투한 감시의 체계는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송중섭 해설사의 1.21 사태에 대한 열띤 설명
송중섭 해설사의 1·21 사태에 대한 열띤 설명

◆ 오늘도 우리가 이 길을 걷는 이유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탐방객은 이 길을 따라 이동했던 공비들의 동선을 떠올리고, 또 어떤 이들은 이곳을 지나 민가로 접근한 당시 상황을 민간인의 입장에서 되짚어본다. 

그러나 결국 이 길은 우리가 모두 한마음으로 전쟁 없는 미래를 바라는 길이다.

흙 위에 남은 발자국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평화의 흔적이다.

분단의 흔적 위에 피어난 이 길의 꽃은, 남북을 잇는 진정한 평화의 상징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전쟁은 결코 다시 일어나면 안되죠" 라고 인터뷰하는 주부
"전쟁은 결코 다시 일어나면 안 되죠"라고 인터뷰하는 탐방 참여자

※ 이 글은 동시대를 살아낸 필자의 기억과 고랑포 역사공원의 송중섭 해설사님의 귀중한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 '평화의 길 누리집' 바로가기 www.dmzwalk.com
☞ '두루누비 누리집' 바로가기 www.durunubi.kr

정재영
정책기자단|정재영
cndu3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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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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