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를 통해 맺어진 조약은 무효래”, “빨리 밀서를 완성해야 해요”…. 지난 10월 13일, 과거로 시간 여행을 온 듯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왕릉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따라 미션을 수행하는 ‘왕릉 어드벤처’에 참여한 이들이다. 미션은 을사늑약 이후 특사단이 되어 만국평화회의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구성됐다. 대한제국 황제의 능인 홍유릉에서 미션을 수행하여 그 의미가 컸다.
조선왕릉축전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 만들기
조선왕릉 관광객이 능주와 관련한 역사 속 인물이 되어 임무를 완수하는 ‘왕릉 어드벤처’는 조선왕릉축전의 대표 콘텐츠다. 올해는 ‘조선 표류기’를 주제로 기획됐다. 조선시대로 이동한 참여자가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힘쓰는 이야기다. 이때 홍유릉, 동구릉, 사릉, 광릉, 영릉 등 각 능주의 이야기를 담았다. ‘홍릉과 유릉은 고종과 순종의 능’이라는 사실을 내가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이유다.
이처럼 조선왕릉에서 특별한 추억을 더하는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10.11.~10.20.)이 올해 5회째를 맞이했다. 지난해까지 ‘조선왕릉문화제’로 열리던 행사가 올해부터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올해 축전이 진행된 5기를 포함한 조선왕릉 40기는 2009년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바 있다.
“조선왕릉이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근간으로 한 독특한 조경양식을 갖추고 있고, 지금까지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는 점”, 조선왕릉 유네스코 등제 평가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다. 이번 축전에서는 조경양식과 무형 유산 각각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중 먼저 왕릉 조경의 미적 요소를 즐겼던 ‘왕릉 포레스트’를 소개한다.
왕릉에서 잘 쉬다 갑니다
조선왕릉은 당대의 미적 감각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왕릉 건축 양식을 보고,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왕릉 포레스트’ 프로그램에서는 왕릉 이야기를 향으로 만났다. 다양한 아로마 향을 맡으며 왕릉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향기 포레스트. ‘조선의 아침’, ‘왕릉의 가을’ 등 다양한 향을 맡으며 고요한 향과 고즈넉한 왕릉이 조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직접 향을 만드는 ‘향기 테라피’ 수업도 진행됐다. 수업을 앞두고 ‘서로 다른 매력의 6가지 향 중 무엇을 선택할까?’라는 고민이 있었지만 테라피스트의 설명과 조향으로 해결했다. 왕릉의 아침 공기를 표현한 ‘조선의 아침’이 내 코를 사로 잡았다. 안내에 따라 나만의 ‘조선의 아침’ 향수를 제작했다. 조선시대의 활기찬 공기가 손안으로 쏙 들어온 순간이다. 향기 테라피 덕분에 조선왕릉축전 이후에도 왕릉의 에너지를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40분 간의 향기 테라피 이후 유릉 방향으로 이동했다. 릉 내는 ‘왕릉 어드벤처’에 참여 중인 아이들로 가득했다.
특사로서 ‘왕릉 어드벤처’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릉 곳곳을 방문해야 했다. 5개 미션을 모두 완료하자 미션 완료 인증서와 특별 선물도 받았다. 조선시대 때 사용한 가마가 그려진 퍼즐 모양이었다. 2024년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을 진행하는 5개 왕릉에서 ‘왕릉 어드벤처’를 완수하면 하나의 퍼즐이 완성된다.
왕릉에 밤이 찾아오다
궁 야간 개장, 왕릉 야경 등은 남녀노소에게 인기 만점이다. 전통 건축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이 밤하늘과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기 때문이다. 낮과는 다른 국가유산의 밤의 매력을 느끼고자 하는 방문객도 많다. 일반적으로 밤에는 이곳에 입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 기간 왕릉 야경을 배경으로 한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은 관람객과 왕릉 간 친밀감을 높인다.
지난 13일, 홍유릉에서는 조선 왕의 국상(國喪)을 주제로 한 창극 ‘신들의 정원’이 진행되었다. 어둠이 드리운 분위기가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공연과 조화를 이루었다. 왕의 죽음을 맞이하는 왕실의 모습에서 조선시대 무형 문화를 엿보았다. ‘왕릉 어드벤처’ 뱃지 속 가마인 대여(大輿)도 등장해 축전 프로그램 간 유기성을 더했다. 왕릉의 역사적 의미를 더욱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공연이 우리나라만의 공연 콘텐츠로 거듭나길 바란다.
‘신들의 정원’ 후반부 드론 공연은 국가유산 콘텐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조선왕릉의 역사적, 문화적, 생태적 가치에 더해 신기술이 합쳐진다면 우리만의 특색있는 K-공연이 되지 않을까? 한편, 반짝 빛나는 곳은 무대뿐만이 아니었다. 자이언트 플라워 등 빛을 활용한 예술 작품이 연지 주변에 가득했기 때문이다.
조명과 레이저로 꾸며진 홍유릉은 기념 사진을 남기기 제격이었다. 이처럼 선물부터 사진까지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득했던 2024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 행사는 10월 20일까지 홍유릉, 동구릉, 사릉, 광릉, 영릉에서 진행된다. 국가유산 조선왕릉축전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행사로 자리잡길 바란다. 그렇게 될 때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특별한 경험이 일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희 yunhee129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