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을 때마다 붉은 치마들이 너풀거렸다. 거리를 지나는 내외국인할 것 없이 모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바라봤다. “아름답다”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난 10월 14일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는 한복주간 행사 일환으로 ‘청소년 전통 성년례 재현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이틀 동안 각각 외국인과 내국인을 상대로 진행한다.
행사에 앞서 참가자들은 한복진흥센터에 모였다. 저마다 한복을 입고 머리와 화장을 받으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해외에서 전통 성년례라는 행사를 하게 된 외국인 참가자들은 좀 더 기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전 설명을 들은후 모두 행사장인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걷는 동안 한복이 흐트러지면 이번 성년례 한복을 제작한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가 차근차근 매만져줬다(그는 영화 왕의 남자, 쌍화점 등에서 의상을 제작한 담연의 디자이너다).
행사장에 도착하자 신기하게 쳐다보던 외국인이 어떤 행사인지 물었다. 이색적인 모습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년례가 시작되자 주위에는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필자 역시 성년례를 처음부터 직접 본 건 처음이라 호기심이 일었다.
“성인이 되는 건 쉽지 않아요. 앞으로 어떻게 자신의 인생을 그려갈지 책임을 지는 나이가 된 거잖아요. 실수해도 그걸 인정하고 더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성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을 대표하는 조혜영(한국조형디자인협회)이사장의 말에 참가자들은 손 모양을 가지런히 했다. 이어 한 사람씩 상 위에 놓인 성년선언문을 읽었다. 이어 참가자들은 초례를 통해 찻잔에 따라준 차를 마시며 덕담을 들었다.
“축하합니다. 이제 그대들은 성인이 되었습니다. ”
어른인 조 이사장이 성년 선언을 하자 모두 기쁜 기색이 가득했다. 이들은 행사 이후 경복궁으로 건너와 이곳저곳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궁에서 전통한복을 입은 참가자들은 어우러져 선뜻 내·외국인 구분도 가질 않았다.
“저 지금 굉장히 놀랐어요. 뭐라고 설명하기 힘들만큼 감격스러워요.”
행사를 마친 로로(24) 씨가 말했다. 앞서 센터에서 사전 인터뷰 때와는 표정부터 목소리가 달랐다. 레바논 국적인 로로 씨는 독일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태어나서 줄곧 유럽에만 있어 색다른 아시아 문화가 궁금하던 차였다. 한국의 드라마와 노래를 접하고 한국이다 싶어 2년 전 한양대학교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왔다. 이번 행사는 한국에 사는 외국인 단톡방을 통해 알게 됐다.
“이 행사가 무척 신기해요. 제가 독일이나 레바논에서 전통 의상을 입거나 성년례를 하지 않았거든요”
공교롭게도 원래 성년이었던 생일도 한국에서 맞았다. 물론 당시 특별한 행사는 없었다. 한복 착복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고궁에서 한복을 대여해 입어봤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당연히 한복을 입고 싶어 꿈에 그렸다고. 당시 입었던 한복과 전통한복은 확실히 다르다고 말했다.
“우선, 전통한복은 옷감이 너무 좋아요. 색도 고급스러우면서도 은은한 느낌이 마음에 쏙 들고요. 처음 입었던 건 굉장히 개량된 현대식 한복이었거든요. 전통한복은 오래전부터 한국 사람이 입던 옷이라 그런지 좀 더 깊이가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전통한복은 불편한 줄 알았는데 편해서 좋다고 덧붙였다. 이어 성년례를 참여하게 된 이유도 짧게 들려줬다. 이전에는 성년례가 있는 줄 몰랐지만, 신청하기 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무척 뜻깊게 느껴졌단다.
오늘 어른으로 성년례를 진행한 조혜영 이사장(한국조형디자인협회)은 연신 “곱다. 정말 제대로 예쁘게 입으니 얼마나 고운지 몰라”라며 한복을 극찬했다. 전통한복의 차이를 묻자 그는 조용히 답했다.
“원단이 다르죠. 대여 한복은 그냥 빨아서 입을 수 있고요. 지금 입은 전통한복이 기본인데 당시는 금박이 없었어요. 주로 미혼여성은 노란색 저고리에 빨간색 치마를 입었고 저고리가 짧은 편이었죠. 자세히 보면 지금 입은 한복은 모두 디자인 패턴이 돼 있고요. ”
현재 입고 있는 당의는 행사나 특별한 날에 입었다고 했다.
스리랑카와 콜롬비아 출신인 참가자도 흥겨운 표정이었다. 인생 사진을 건지겠다는 결심을 한 듯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강원도에서 왔다는 한국인 여성 참가자는 “제가 올해 성년이 되거든요. 이거다 싶어 선착순으로 신청해 아침부터 서둘러 왔죠”라며 즐거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젊음이 빛나듯 추억도 선명하리라. 전통한복을 입은 참가자들은 궁과 어우러져 찬란해보였다. 그 순간을 기념하듯 그들은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며 행복함을 누렸다.
이 행사는 우리 가족에게도 좀 남달랐다. 올해 성년이 된 딸이 있어서다. 수업과 겹쳐 참여하지 못했지만, 한복을 좋아하는 딸아이 생각이 났다. 며칠 전 더 현대에서 한복문화주간 사전 홍보로 열린 ‘찾아가는 한복상점’에 갔던 딸은 내게 사진을 보내줬다. 그런 생각을 하니 함께였으면 더 좋았을 법 싶다.
그렇지만 한복문화주간은 이제 시작이다. 2024 한복문화주간은 서울공예박물관, 창경궁, 청와대를 비롯한 전국 300여 곳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더욱이 올해는 베트남 호찌민에서도 ‘한-베 우호 한국문화의 날’을 기념해 10월 말 전통의상패션쇼 및 홍보관이 열릴 예정이다. 멋과 전통이 담긴 한 주간 한복의 대향연, 마음껏 누려보자.
2024 한복문화주간(2024.10.14.~10.20.) 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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