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6일 밤 에펠탑이 마주보이는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제33회 올림픽 개막식에서 올림픽 깃발 게양식과 함께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 소속 단원 60명과 프랑스 국립오케스트라 소속 단원 90명이 연주하는 ‘올림픽 찬가’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이 곡은 근대 올림픽 경기에서 사용되는 공식찬가로 그리스 작곡가 스피리돈 사마라스(Spyridon Samaras 1861~1917)가 작곡, 그리스 시인 코스티스 팔라마스(Kostis Palamas 1859~1943)가 작사했다.
그리스어로 된 올림픽 찬가의 영어판 가사의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올림피아의 꺼지지 않는 불길, 우리의 앞날 비추고
역사적인 오늘, 희망의 불꽃으로 우리의 마음을 밝히리라.
유구한 역사의 대회를 함께하려고 전 세계에서 모인 우리,
형제애로 각국의 깃발을 휘날리게 하리라.
가사 중 ‘유구한 역사의 대회’라는 표현에서 보듯 시대적으로 볼 때 올림픽 대회의 기원은 까마득한 옛날 로마가 건국되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는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물루스에 의해 기원전 753년에 건국되었다. 건국 당시 로마는 달동네 같은 부락에 불과했다. 그런데 로마가 건국되기 23년 전인 기원전 776년에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서는 제우스 신을 숭배하는 제전으로 올림픽 대회가 처음 개최되었던 것이다. 당시 올림픽 대회는 4년마다 한 번씩 개최되었고 경기는 5일 동안 진행되었다. 올림픽 대회 기간 동안은 ‘에케헤이리아’(ekecheiría), 즉 ‘휴전’이 선포되어 전쟁 중인 도시국가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각 도시국가의 선수들과 종교 순례자들이 대회장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니까 ‘에케헤이리아’는 올림픽 대회의 평화적 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한편 서서히 세력을 키운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뒤 카르타고를 꺾고 지중해를 내해로 하는 강대하고 거대한 나라로 발전하면서 기원전 146년에는 그리스를 흡수했다. 로마 지배하에서도 그리스에서 올림픽 대회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4세기 후반에 들어서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선포한 로마제국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신을 섬기는 행위를 금지했고 올림픽 경기도 이교도의 제전이라는 이유로 서기 393년에 완전히 폐지하고 말았다.
그후 약 15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프랑스의 교육자이자 역사학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in 1863~1937) 남작은 고대 그리스의 스포츠 정신을 현대에 부활시키고자 했으며, 이를 통해 국제적인 스포츠 대회를 구상했다. 그의 노력은 1894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결실을 맺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결성되었고 제1회 근대 올림픽은 1896년 4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 동안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
이에 국제올림픽위원회 그리스의 비켈라스 위원은 아테네 올림픽을 위해 올림픽 찬가를 그리스 작곡가 스피리돈 사마라스에게 의뢰했다. 작곡가 사마라스는 아테네 음악원에서 공부한 후 1882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음악원에서 유학했고 1885년에는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이탈리아에서 그가 작곡한 오페라 작품들은 크게 주목 받았고 국제적으로도 크게 인정받고 있었다.
이리하여 올림픽 찬가는 1896년 4월 6일 아테네의 파나티나이코 경기장에서 13개국에서 온 241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처음 울려 퍼졌던 것이다. 한편 이 올림픽 경기장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의 경기장을 복원한 것으로 최대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부터는 각 개최국이 원하는 올림픽 찬가를 원하는 음악가들에게 작곡을 의뢰하는 바람에 사마라스의 올림픽 찬가는 오랜 기간 동안 잊혀지고 말았다. 이 곡이 부활한 것은 1958년. 당시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가 사라마스의 곡을 모든 올림픽 대회의 공식 찬가로 채택했던 것이다. 이는 쿠베르탱의 이상을 기리는 동시에, 올림픽 대회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다.
올림픽 찬가는 개막식과 폐막식뿐 아니라, 올림픽 성화 점화 의식과 같은 주요 올림픽 공식 행사에서도 연주된다. 이 곡은 대회마다 개최국이 자국의 언어로 번역하여 부르지만, 원어인 그리스어 가사로 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1972년 뮌헨 올림픽의 개막식과 폐막식에서처럼 합창이나 독창 없이 오케스트라로만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서는 우리말로 합창했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서에는 소프라노 황수미가 그리스어로 독창을, 폐막식에서는 당시 11살의 소년 오연준이 영어로 독창했다.
이번 2024년 파리 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서는 각각 그리스어와 영어로 합창했다. 프랑스 사람들은 프랑스어에 대해 오만할 정도로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이번 폐막식에서 올림픽 찬가를 프랑스어가 아니라 영어로 부른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나 할까.
[음악듣기]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