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 개막식의 피날레는 병마와 싸우는 가수 셀린 디온이 장식했다.
에디트 피아프의 <사랑의 찬가(Hymne A L’amour)>가 에펠탑에서 그녀의 목소리와 함께 울려 퍼질 때, 이전의 모든 퍼레이드들을 음악 속에서 잊혀져 버렸다.
“하늘이 무너져 버리고 땅이 꺼져 버린다 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아무 두려움 없어요”라는 가사내용은 인류애를 강조하는 올림픽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실제 에디트 피아프는 말년에 켈리포니아에서 이런 인터뷰를 했다. 젊은이나 여성, 아이에게 해줄 말이 있냐고 물어보는 기자에게 그녀는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대답했다.
올림픽 정신은 단순히 국가간의 경쟁을 넘어 서로이해하고 평화를 추구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류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올림픽은 여러 음악가들의 작품소재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작곡가들은 계속해서 올림픽을 소재로 작곡을 해왔다. 에너지가 넘치면서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주며 때때로 감동을 주는 올림픽 음악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 안토니오 비발디 <올림피아드>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인 비발디는 올림픽에 영감을 받아 오페라를 작곡했다. 그는 50여개의 오페라를 작곡했는데 그 중 올림피아드는 꽤 알려진 오페라 중 하나다.
물론 그는 바로크시대 작곡가로 쿠베르탱에 의해 시작된 현대 올림픽이 아닌 고대 올림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전체 3막으로된 이 작품은 1734년 작곡되었으며 총 7명의 배역이 출연한다. 초연은 비발디의 고향 베니스 산탄젤로 극장에서 열렸으며 대본은 이미 같은 소재의 작품을 위해 쓰여졌던 대본을 사용하였다.
이 대본은 비발디 이외에도 여러 작곡가의 음악에도 쓰여졌는데, 즉 같은 줄거리이지만 음악만 따로 작곡되었다고 보면 된다.
내용은 고대올림픽 경기를 배경으로 국왕의 딸 아리스테아를 둘러싼 금지된 사랑과 배신을 그리고 있으며 대부분의 바로크 오페라답게 해피엔딩의 결말을 보여준다.
◆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올림픽 찬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마라토너 손기정이 금메달을 딴 대회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이 대회는 또한 독일 나치의 선전도구로 활용되기도 하였는데, 당대 유명 예술가였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또한 그들의 손길을 피해갈 수 없었다.
당시 작곡가로 말러보다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슈트라우스는 나치가 자신들의 선전을 위해 꼭 이용해야 할 예술가였을 것이다.
사실 슈트라우스라는 인물은 나치에 의한 예술 지배 정책의 피해자라는 측면과 나치 협력자라는 모순된 측면이 함께 존재한다. 하지만 열성적인 나치 당원 이었던 그의 아들과 달리 며느리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슈트라우스는 며느리와 손주들을 지켜야 하는 책임 또한 있었다.
가족의 생명이 걸린 문제 이외에도 그가 나치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유는 많았을 것이다. 그는 올림픽 개막식 공연 때 지휘를 직접 하였고 올림픽 찬가도 작곡 하였다.
그의 올림픽 찬가는 IOC에서 독일 올림픽 위원회의 테오도르 레발트 박사로부터 음악을 작곡해 달라는 제의를 받아 작곡하였는데, 자신이 만족하는 가사를 쓴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3~4분정도의 길이의 그의 올림픽 찬가는 금관들의 팡파르로부터 시작하여 우렁찬 합창이 민속적인 멜로디와 함께 어우러진다.
초연은 대규모편성으로 400명정도의 음악가들이 동원되었다고 하며, 전체적 음악 분위기는 올림픽 찬가답게 극적이고 다이나믹한 느낌을 주고 있다.
◆ 레너드 번스타인 <올림픽 찬가>
올림픽 찬가를 작곡한 또 다른 음악가는 다재 다능한 천재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번스타인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을 맡아 지휘할 정도로 화합과 평화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다.
번스타인이 올림픽 찬가를 작곡한 것은 어찌 보면 그가 가진 자유로운 예술적 성향과 올림픽 정신이 서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1981년 당시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올림픽 총회를 위해 작곡되었다. 81년 바덴바덴 올림픽 총회는 88서울올림픽 개최를 확정한 총회로 우리에게 뜻 깊은 회의 이기도 하다.
번스타인의 올림픽 찬가 역시 합창의 멜로디가 아름답다. 슈트라우스의 찬가처럼 역동적인 편은 아니지만 선율의 아름다움을 통해 평화의 목소리를 드높이고 있다.
찬가는 독일 작가 권터 쿠네르트의 가사에 맞춰 작곡되었으며 작품 피날레 부분은 번스타인의 뮤지컬 멜로디와 흡사하다는 평가가 있다.
초연은 남서독 라디오 방송 교향악단(SWR)과 바덴바덴 청소년 합창단이 하였으며, 첫 레코딩은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존 윌리엄스와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가 녹음하였다. 그의 감수성이 느껴지는 이 작품은 대략 5~6분 정도의 길이로 연주되고 있다.
◆ 필립 글래스 <올림피언>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이자 미니멀리즘을 작곡기법에 활용한 현대음악의 대가, 바로 필립 글래스이다. 음악에 관심이 많지 않다면 다소 생소할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영화 <디 아워스>와 <트루맨 쇼>의 OST를 담당하기도 한 대중적 예술가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성화 점화와 폐막 때 울려 퍼진 음악은 그가 작곡한 <올림피언>, 즉 올림픽 선수들이다. 올림픽 위원회인 IOC로부터 위촉 받아 작곡된 이 작품 또한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음악을 이끌고 있다.
그는 작품에 대한 인터뷰에서 “올림픽만큼 우리의 공유된 인간성, 우리의 공동 운명을 의식하게 만드는 행사는 생각나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또한 성화 점화의식에 관하여는 “성화 점화식은 우리의 공유된 의식을 요약한 필수적인 상징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 예술가가 그런 공개 행사에 개인적으로 기여하도록 요청 받는 것은 분명 드문 일입니다. 저에게는 독특하게 도전적이고 고무적인 경험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글래스의 올림픽에 관한 관심은 자국의 LA올림픽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위해 인도음악의 대가 라비 샹카르를 비롯하여 마크 앳킨스, 우 만, 포다이 무사 수소, 애슐리 맥아삭, 우아크티등과 협업하여 올림픽을 위한 오페라 <오리온>을 작곡하기도 했다.
◆ 존 윌리엄스 <올림픽 팡파르와 테마>
영화음악계의 거장 존 윌리엄스도 올림픽 팡파르와 테마를 작곡하였다. 그가 영화음악에서 금관을 이용하여 바그너(R.Wagner)적인 색채의 웅장하고 화려한 선율을 끌어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의 올림픽 팡파르와 테마곡은 지금도 올림픽 경기장면이나 관련영상에도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는 이 곡을 1984년 LA 올림픽 위원회로부터 위촉 받아 작곡하였는데, 이후 그래미 어워드 악기연주(Instrumental) 부분에 후보로 선정될 정도로 올림픽음악으로는 상징적인 음악이 되었다.
존 윌리엄스는 자신은 열렬한 스포츠 팬도 아니고 올림픽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젊은이(선수)들에게 영감을 받았다고 하였다.
이 작품의 총보에는 플루트 3개(한 개는 피콜로를 겸함), 오보에 3개, 클라리넷 3개(한 개는 베이스 클라리넷을 겸함), 바순 3개(한 개는 콘트라바순을 겸함), 호른 4개, 트럼펫 4개, 트롬본 4개, 튜바, 팀파니, 타악기(스네어, 필드 드럼, 심벌즈, 베이스 드럼, 심벌즈, 차임, 글로켄슈필, 비브라폰, 트라이앵글), 하프, 피아노, 현악기로 구성되어 사운드의 웅장함을 더하고 있다.
존 윌리엄스는 1984년 7월 28일 로스앤젤레스 콜로세움에서 열린 개막식에서 이 곡을 직접 지휘하였고, 레코딩도 하였다. 그는 1992년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협동 정신과 영웅적 성취, 올림픽을 위한 모든 노력과 준비, 경기 후의 모든 환호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 반젤리스 <불의 전차>
1981년도 제작된 영화 <불의 전차>는 1924년 파리 올림픽의 영국 육상 금메달 리스트 에릭 리델과 해럴드 에이브럼스의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한다.
에릭 리델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달리기를 하였다. 헤럴드 에이브럼스는 고리대금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유대인으로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두 명이다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으로 특히 에릭 리델은 올림픽 100m의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하지만 경기가 주일인 일요일에 열리자 경기를 포기하였고, 헤롤드가 대신 나가 금메달을 딴다.
실제 에릭은 자국민의 비난과 영국왕자의 설득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반전은 그가 친구가 양보한 400m에 출전해서 기적같이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우승했으며 그 기록은 16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고 한다.
에릭은 인터뷰에서 처음 200m는 제 힘으로 달렸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달릴 수 있었다고 하였다. 에릭과 헤럴드, 두 젊은이의 신념과 열정은 반젤리스의 음악을 통해 영화 속에 녹아 들었다.
재작년 타계한 그리스 출신의 작곡가 반젤리스는 신시사이저를 이용하여 꺼지지 않는 심장박동소리를 표현했으며, 희망차고 아름다운 선율을 통해 스포츠 영화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반젤리스의 이 음악은 영화의 인기와 더불어 빌보드 차트에서 한동안 1위를 차지하였고 아카데미 영화음악상도 수상하였다.
영미 합작영화인 불의전차의 스토리와 음악의 인기로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 반젤리스의 음악이 다시 등장하였다. 런던 심포니와 사이먼 래틀의 지휘 그리고 미스터 빈으로 불리는 르완 왓킨슨이 공연의 재미를 위해 찬조 출연하였다.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